몇 가지의 제약들을 재고해보자. 이를테면 주어진 공간과 임의의 조합 같은 것들. 주어진 공간('2/W')은 결국 폐허인 셈인데, 이때의 폐허는 남루하고 거칠게 뜯겨 나간 물리적인 외관으로부터 비롯하는 한편, 굳이 그러한 공간상에서 운용됐던 어떤 미술이 가로지른 시간과 복잡하게 얽혀있다(‘커먼센터’). 지금 시점에서 주어진 공간은 그러한 시간의 레이어의 얄팍한 무게를 애매한 자세로 견디고 있을 뿐, 온전히 중첩된 채 자신을 근과거의 잔존물로 재현하지도 않고 시침 떼고 근과거를 이면에 파묻은 채 오로지 폐허의 텍스처만을 노출하고 있지도 않다. 즉 주어진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선 ‘이곳’이 기약 없이 지속하고 있는 과도기적인 상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2015년에 주어진 폐허는 유달리 지나간 시간과의 씨름에서 자유로웠다. 다수의 플레이어-관객들은 자신이 맞닥뜨린 특정한 경험을 유통시키기 위해 휘발성이 강한 시간을 지펴댔고, 신생공간이 점유한 임대 및 유휴 공간은 설사 낡은 폐허로서 서울이라는 도시에 틈입해있더라도 애초에 그 장소가 무엇이었는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앞선 ‘플레이어’라는 표현이 암시하듯, 신생공간을 계기로 폐허는 더더욱 납작해졌고, 자신의 부서진 잔해들을 과거의 영역으로부터 해금시켰으며, 그러므로 공간이 부과하는 일련의 제약들은 현재와 견주며 독해해야 하는 과거형의 텍스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고안해낸 게임의 전제들이 수록된 룰북으로, 폐허는 그것이 납작해진 만큼 앞선 게임을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플레이보드로 귀결됐다.

그러므로 <호버링Hovering>에게 주어진 공간은 물리적인 폐허인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자취를 감춘, 유예된 시간의 껍데기만이 남아있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금 ‘이곳’에서는 한때 활성화됐던 게임의 규칙과 이를 매개로 플레이어들 간에 형성됐던 모종의 관계, (반드시 인스타 라이브 방송을 켜지 않더라도) 금세 파편적인 이미지 정보들로 유통되며 도처에서 상연됐던 일련의 전시와 이벤트들, 무엇보다 그것들이 폐허의 텍스처와 호환되는 과정 등이 남긴 관성이 일종의 잔여 전류처럼 미세하게 흐르고 있을 뿐이다. 신생공간이라는 근과거보다 한참 떨어져 있는 어떤 과거의 구간에서 부서지고 망가진, 그럼으로써 폐허가 된 공간. 그 위에 실제로는 휘발됐으나 한때 플레이어였던 누군가의 관점에서는 일종의 잔해들로 남은 지나간 시간들로 구성된 또 다른 의미에서의 폐허가 레이어링Layering된 셈이다.

유령 서버, 기한이 만료된 플랫폼, 폐허 위의 폐허와 같은 수사들은 주어진 공간의 기이한 성격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호버링Hovering>의 참여 작가들(김동용, 김효재, 류수연, 전예진, 정완호, 서민우, 오연진, 지호인)은 ‘이곳’에서 공회전하고 있는 잔여 전류들만을 활용해 공간을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서로 간의 관계를 모색한다. 이를테면 각자 점지해둔 서로 다른 좌표에서 출발해, 개별 작업들을 탐침 삼아 두서없이 흩어진 잔여 전류들을 훑어나가면서 불현듯 신호가 울리는 구간을 표기한 뒤, 표기한 지점들을 느슨하게 잇는 식으로 나름의 동선과 얼개를 짠다. 그것들은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중첩하기도 하고 때로 반목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 이들은 초기화된 맵Map의 면면을 작업을 매개로 탐색하고 그 와중에 작업들 간의 접경지대를 파생시키는 식으로 공간 내의 그리드를 새롭게 구획하거나 허물어 나간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여전히 납작한, 그러나 신생공간이라는 근과거가 기입된 애매한 위상의 폐허를 다시 플레이보드로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이는 잔해들을 주워섬겨 다시금 공동의 플랫폼을 구축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주지하듯 한 번 유예된 시간은 지속할 수 없다. 그와 별개로 <호버링Hovering>이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유령 서버에 재접속했거나 미처 로그아웃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유령 플레이어들의 존재다. 이미 무효화된 공간을 다시금 가로지르며 레이어링된 폐허와 폐허 사이의 미세한 간극을 체감하고, 이 공간은 도대체 어떻게 기능했던 것인지, 공간이 노출하고 있는 텍스처와 제한된 범위와 번번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코너들을 어떻게 작업을 위한 한시적인 지지대로 삼았는지 등을 재확인하면서, ‘이전’의 플레이어 정체성으로부터 벗어난 채 아직 정주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 유령 시점의 자유도를 점차 확보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앞선 접경지대는 잔여 전류와 동시다발적으로 합선함으로써 특정 구간들에 남은 유령의 자국이기도 하다. 본 전시에는 그러한 자국이 산개해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플레이할 수 있을까. 과연 일련의 접경지대와 자국들은 이미 닫힌 서버를 효과적으로 해킹하고, 그럼으로써 유령 플레이어들의 자유도를 확장시킬 수 있을까. 그런 질문들이 <호버링Hovering>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화두인 셈이다.

 

글 : 권시우

<Hovering>

2018.01.06 - 2018.03.18

 

참여작가

김동용, 김효재, 류수연, 서민우, 오연진, 전예진, 정완호, 지호인

 

전시시간

목 - 일요일

13:00 - 18:00

 

장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경인로 823-2, 2/W

 

오프닝

2018년 1월 6일, 오후 5시

 

기획

권시우, NNK(윤태웅)

 

권시우

 

공간

김국한, 김성재, NNK(윤태웅)

 

음향 테크니션

김기성

 

디자인

김국한

 

주최 및 주관

90APT, 2/W